본문 바로가기

한국의 산하/전라도

전남 순천, 송광사

반응형

 

계속 이어지는 남도여행.

 

조계산(曺溪山) 자락에 세워진 송광사(松廣寺)를 찾았다.

 

수도권에서 멀기에 자주 찾아가기 어려운 송광사(松廣寺)를 아주 오랜만에 가본다.

 

 

 

 

송광사(松廣寺) 조계문인데 일주문이라고도 한다.

 

 

 

 

 

송광사(松廣寺)는 절앞을 지나는 계곡위 걸쳐진 구름다리가 일품이다.

 

 

 

 

 

 

 

 

 

 

 

송광사 관음전

 

 

송광사(松廣寺) 대웅보전

 

 

곳곳에 피어난 붉은 배롱나무가 절의 아름다음을 더해준다.

 

 

 

 

 

 

 

송광사(松廣寺) 관음보살

 

 

 

 

 

 

 

송광사(松廣寺) 불이문

 

 

 

 

 

 

 

 

 

 

 

 

 

 

 

 

 

 

 

 

 

 

 

 

 

 

송광사(松廣寺)  종고루(鐘鼓樓)

 

최근에 송광사(松廣寺)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을 촬영했다.

비오는 날의 송광사(松廣寺)  종고루(鐘鼓樓)에서 두 사람(해준과 서래)이 만나는 장면이 촬영되었다.
 

영화 '헤어질 결심' 캡쳐

 

 

 

 

 

 

초록의 숲 사이로 흐르는 계곡에 자리잡은 송광사는 다른절과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구름다리위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의 여유가 한결 돋보인다.

 

가을 단풍 시즌에 다시 찾아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송광사(松廣寺)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전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 '송(松)'은 '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 국사 지눌스님과 연관된 전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 (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 '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지금 남아 있는 기록에 의하면 송광사는 신라말 혜린(慧璘)선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창건 당시의 이름은 송광산 길상사(吉祥寺)였으며 100여 칸쯤 되는 절로 30, 40명의 스님들이 살 수 있는
그리 크지않은 규모의 절이었다고 한다. 그 뒤 고려 인종때 석조(釋照)대사께서 절을 크게 확장하려는 원을
세우고 준비하던 중 타계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50여년 동안 버려지고 페허화된 길상사가 중창되고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게 된 것은 불일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정혜결사가 이곳으로 옮겨지면서 부터이다.
지눌스님은 9년 동안의(명종 27년1197년 ~ 희종 원년) 중창불사로 절의 면모를 일신하고 정혜결사운동에
동참하는 수많은 대중을 지도하여 한국불교의 새로운 전통을 확립하였다.
이 때부터 송광사가 한국불교의 중심으로 각광받기 시작하였다. 그 동안 정유재란, 6.25사변 등 숱한 재난을
겪었으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지금의 위용을 갖출 수 있게 되었다.

 

 출처 : 송광사 홈페이지

 

 

 

 

 

 

 

반응형
Recent Posts
Popular Posts
Calendar
«   2024/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03-28 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