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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하/경상도

경북 의성, 조문국 사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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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한국에 살면서 의성이란 동네를 처음 와 보았다. 국내 여행도 자주 다녀야 될 것 같다.

 

 

▲의성 조문국 사적지 주차장

 

 

 

▲의성 금성산 고분군 종합안내도

 

안내도를 보니 의성 금성산 고분군은 제법 넓었다.

 

의성의 금성산 고분중에 가야시대 왕이었던 경덕왕 조문국의 릉이 있는 사적지이다.

 

삼한시대 부족국가 조문국의 왕릉, 경덕왕릉

의성읍에서 남쪽으로 4㎞ 못 미쳐 금성면 대리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옛 조문국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능의 둘레가 74m, 높이가 8m이며 능의 정면에는 가로 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있다. 

1725년(영조 원년) 현령 이우신이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 등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왕릉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고,  그후 경덕왕릉보존회가 구성되어 다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묘역은 ‘조문국경덕왕릉’이라고 쓰여진 비석과 문인석·장명등·상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 경덕왕릉이 발견된 전설에 대하여 *

경덕왕릉이 발견된 배경에 대한 신기한 전설이 조선 숙종 때 <허미수 문집>에 실려있다. 현재의 능지는 약 500년 전에 오극겸의 외밭이었다. 

외를 지키던 어느 날 밤 꿈에 금관을 쓰고 조복을 한 백발의 노인이 나타나서 “내가 신라시대 조문국의 경덕왕인데 너의 원두막이 나의 능위이니 속히 철거를 하라.”고 이르고는 외직이의 등에다 한줄의 글을 남기고 사라졌다. 이에 놀란 외밭 주인은 일어나 보니 꿈속에 노인이 써준 글이 그대로 자기 등에 씌어 있어 현령께 고하고 지방의 유지들과 의논하여 봉분을 만들고 매년 춘계향사를 올렸으며 지금도 제례행사는 계속되고 있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조문정 (전망대)

 

 

▲의성 금성산 고분군 파노라마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이정표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6호 고분

 

 

▲의성 금성산 고분군

 

나무 한그루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의성 금성산 고분군

 

 

▲의성 금성산 1 호 고분

 

의성 금성산 1 호 고분이 경덕왕릉 고분임을 알 수 있다.

 

 

▲의성 금성산 1 호 고분 경덕왕릉

 

▲조문국 고분 전시관

 

오전인데도 벌써 날씨가 덥다. 그런 탓인지 사람들이 없어서 혼자 오붓하게 조용히 고분 전시관 내부를 관람 할 수 있었다.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순장(殉葬)의 풍습으로 두 사람이 함께 매장된 무덤의 모형이 전시 되어 있다.
그 옛날 장레문화의 일면을 보여주는 순장의 전형적인 유물인 것 같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순장의 풍습은 법으로 금지 되었고 대신 토용들을 함께 묻었다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진시황의 병마용 토기이다.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그 시대에 이루어진 순장사례들에 대한 설명문을 읽어보니 죽은이를 따라 같이 죽어야하는 순장을 당하는 사람들의 심정은 어땠을지?

 

순장 [殉葬] - 신분사회의 어두운 그림자


어떤 죽음을 뒤따라 다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강제로 죽여서 주된 시신과 함께 묻는 장례 습속을 순장(殉葬)이라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풍속이지만, 순장은 우리 조상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쳤다.

순장의 유례

인간은 죽음이란 특별한 사건을 놓고 다양한 해석을 해왔다. 가까운 이들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 아닌 무엇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죽음 이후에도 현세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는 믿음이 생겨났다. 특히 신분에 따른 계층의 차이가 생겨난 후,
권력을 가진 이들은 죽음 이후에도 자신의 권력이 계속되기를 원하였다. 죽음 이후에도 현세의 삶이 재현된다는 믿음에,
현세에서 부리던 시종들이 죽음 이후에도 자신을 봉양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생각이 더해져 등장한 것이 순장이다.

순장은 신분질서가 확립되어 권력자가 등장하고, 가부장(家父長) 질서가 확립되며, 문명이 발달할 무렵 시작된,
전 세계에 걸쳐 분포하는 장례 풍습의 하나였다. 대표적으로 수메르와 같은 고대 오리엔트 문명과 이집트,

중국의 상왕조(商王朝)에서 순장 풍습이 발견되었다. 우리 역사에서는 기원전 7세기 요동반도 남단에 위치한 강상무덤과 누상무덤을 고조선시대 세력가의 순장 무덤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 전시관 내부

 

 

▲조문국 고분군

 

 

▲조문국 고분군

 

문의 및 안내 : 054-830-6909
주소 :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주차 : 무료주차 
이용요금 :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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