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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하/경상도

경북 영주,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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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성리학의 산실인 한국 서원 9곳 중 한 곳인 경북 영주 소수서원.

 

국내여행에 등한시했던 지난날이지만 코로나 이후에는 어쩔 수 없이 국내여행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소수서원에 들렀다가 우리곁에 늘 가까이 있어서 소중함을 모르고 지내다가 새삼 알게 된 한국의 문화유산이 세계문화유산의 필수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점이다.

이로서 한국에는 14건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북한에는 3 건이 있다)

 

명칭 소재지 건립시기 주요 제향인물
소수서원 경북 영주 1543년 안향, 주세붕
남계서원 경남 함양 1552년 정여창
옥산서원 경북 경주 1572년 이언적
도산서원 경북 안동 1574년 이황
필암서원 전남 장성 1590년 김인후
도동서원 대구 달성 1605년 김굉필
병산서원 경북 안동 1613년 류성룡
무성서원 전북 정읍 1615년 최치원,신잠
돈암서원 충남논산 1634년 김장생

 

9곳의 서원중 옥산서원, 도산서원, 돈암서원 그리고 소수서원 4곳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머지 5곳도 서원테마여행을 계획해서 돌아보아야겠다.

 

 

넓은 주차장에는 영주  선비의 동상이 서있다.

 

소수서원 입장료는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65세 이상 경로우대 무료이다.

입장료를 내면 소수서원, 소수서원 박물관, 선비촌을 다 둘러볼 수 있다.

 

소수서원 입구

 

 

큰 바위에 선비의 고장이라고 새겨져 있다.

 

 

다리

 

 

죽계별곡 설명문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건물이 있는데 소수서원에 대한 각종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어서 이곳에 먼저 들러보면 소수서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박물관은 따로 있다.

 

소수서원 설명문들

 

1548년 10월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이 조정에 사액을 요청해서 내려진 사액에 대한 설명문.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

 

 

 

 

 

 

 

 

 

 

 

 

 

 

소수서원 사료전시관

 

소수서원 입구

 

 

 

 

 

 

옛 건축 양식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는 벽과 문.

 

 

일영대

 

 

영정각

 

 

 

직방재

 

 

소수서원 사액

 

퇴계는 1549년 1월에 경상도관찰사 심통원(沈通源, 1499∼?)을 통하여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賜額)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 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로 결정하고 1550년(명종 5) 2월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수서원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이상해)

 

백운동

 

 

 

경렴정(景濂亭)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로 보호수로 지정되었다.

 

 

경렴정(景濂亭)에서 죽계수(竹溪水)를 내려다 보며 풍류를 즐겼다.

 

죽계수(竹溪水)

 

 

 

 

 

 

경렴정(景濂亭)

 

 

 

 

 

 

 

 

 

연못

 

 

연못 주위에 분홍꽃들이 저녁 햇살을 받아 예쁘게 보인다

 

 

다리를 건너가 보았다.

 

 

죽계수(竹溪水)

 

 

광풍정

 

광풍정을 지나 소수서원 박물관에 들어가 보았다.

 

 

 

 

기흥리 바위그림

 

 

 

 

 

흥천리 고인돌

 

 

부석사

 

 

 

 

 

 

 

 

제를 지내는 모습을 미니어처로 재현 놓았다.

 

 

 

공부(?)하는 모습도 재현해 놓았다.

 

 

영주 바느레 소나무가 유명한 모양이다.

 

 

영주 바느레 소나무

 

언젠가 한번 찾아가 보고 싶은 소나무이다.

 

시간이 없어 그냥 대충 훑어보며 박물관을 나왔다.

 

 

소수서원(紹修書院)

 

소수서원(紹修書院)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이다. 소수서원은 1541년(중종 36) 7월에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周世鵬)이 1542년(중종 37) 8월에 이곳 출신의 성리학자인 안향(安珦)을 배향(配享)하는 사당을 설립하기 위해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듬해인 1543년 8월 11일에 완공하여 안향의 영정을 봉안하고, 사당 동쪽에 백운동서원(白雲洞書院)을 같은 해에 설립한 데서 비롯되었다.

소수서원은 서원 동쪽에 죽계수가 북에서 남으로 흐르고 입구에는 소나무가 우거진, 풍광이 수려한 곳에 자리잡았다.
주세붕이 서원 이름을 '백운동'으로 한 것은 소수서원의 자리가 중국 송(宋)나라 때 주희(朱熹, 1130∼1200)가 재흥시킨 백록동서원(白鹿洞書院)이 있던 "여산(廬山)에 못지않게 구름이며, 산이며, 언덕이며, 강물이며, 그리고 하얀 구름이 항상 서원을 세운 골짜기에 가득하였기" 때문에 '백록동'에서 취한 것이라고 한다.

주세붕이 편찬한 『죽계지(竹溪志)』 서문에는 "교화는 시급한 것이고, 이는 어진 이를 존경하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하므로 안향의 심성론(心性論)과 경(敬) 사상을 수용코자 그를 받들어 모시는 사당을 세웠고, 겸하여 유생들의 장수(藏修)를 위하여 서원을 세웠다"는 설립 동기가 적혀 있다. 백운동서원이 들어선 곳은 숙수사(宿水寺) 옛터로 안향이 어린 시절 노닐며 공부를 하던 곳이다. 현재 서원 입구에 있는 당간지주(幢竿支柱)는 이곳이 절터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백운동서원이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고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1548년 10월 풍기군수로 부임한 퇴계 이황의 노력 덕분이었다. 퇴계는 1549년 1월에 경상도관찰사 심통원(沈通源, 1499∼?)을 통하여 백운동서원에 조정의 사액(賜額)을 바라는 글을 올리고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명종은 대제학 신광한(申光漢, 1484∼1555)에게 서원의 이름을 짓게 하여 "이미 무너진 유학을 다시 이어 닦게 했다(旣廢之學 紹而修之)"는 뜻을 담은 '소수'로 결정하고 1550년(명종 5) 2월에 '소수서원(紹修書院)'이라고 쓴 현판을 내렸다.

소수서원은 조선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면서, 조정에 의하여 서원이 성리학의 정통성을 인정받는 계기가 된다. 사액을 내려 국가가 서원의 사회적 기능을 인정한다는 것은, 곧 서원이 갖는 중요한 기능인 선현의 봉사(奉祀)와 교화 사업을 조정이 인정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네이버 지식백과] 소수서원 (한국 미의 재발견 - 궁궐 · 유교건축, 2004. 11. 30., 이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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