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평창 응암굴 역고드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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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드름은 보통 위에서 떨어지는 물이 얼어붙어 생기는 것으로 알고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몇몇 동굴에서는 자연의 법칙을 깨고 땅에서부터 솟아나는 역고드름을 볼 수 있는 동굴이 있다.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위치한 응암굴(鷹岩屈)로 역고드름을 보러 갔다.

 

 

▲응암굴(鷹岩屈)

 

응암굴(鷹岩屈)을 보려면 꽁꽁 얼어붙은 강을 건너가야 한다. 작은 동굴 2개가 보인다.

 

 

▲응암굴(鷹岩屈)

 

 

 

 

 

▲응암굴(鷹岩屈) 역고드름

 

 

 

▲응암굴(鷹岩屈) 역고드름

 

 

칼처럼 생긴 역고드름을 볼 수 있다.

 

 

▲응암굴(鷹岩屈) 역고드름

 

 

 

▲응암굴(鷹岩屈) 주변 고드름

 

 

주변에는 일반적인 고드름을 볼 수 있는데 동굴안의 역고드름을 보니 자연은 참 신비하다는 것을 느낀다.

 

응암굴(鷹岩屈)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마지진에 위치한 동굴이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상굴과 하굴로 나뉘어 설명이 수록되어 있다. 응암굴이 있는 절벽은 천동리로부터 시작되어 응암리까지 1㎞ 정도 이어져 있는데 강물과 조화를 이루는 절경이다. 응암절벽에는 장수굴 · 큰굴 · 땅굴 · 옆땅굴 · 멍어굴로 불리는 크고 작은 10여 개의 굴이 있다. 강물 또한, 유유히 응암리를 감돌아 사행(蛇行)한다. 예부터 '좋다, 제일 매화(梅花:응암리의 옛지명)'로 불리어 왔다. 임진왜란 당시 군수 권두문(權斗文)이 노성산성이 함락되기 직전 가족 및 남은 병력과 많은 군민들을 데리고 본래 매화굴이라 불리던 천연의 암굴로 피신하였다. 이 굴은 약 200m 간격의 두 굴로 되어 있다. 두 개의 굴 중 위에 위치한 굴은 군수 일행이 피신하였다 하여 관굴(官窟)이라고 부르고, 아랫굴은 군민들이 피난하였다 하여 민굴(民窟)이라고도 한다. 지형이 험하고 굴이 은밀하여 일본군은 군수의 행방을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관굴에 숨어 있던 권군수 일행은 민굴과 연락을 위해 매의 발목에 서신을 매달아 교환하였다. 일본군이 매방울 소리를 수상히 여겨 주변을 조사한 끝에 굴을 발견하였으나, 통로를 발견하지 못해 공격이 쉽지 않았다. 일본군이 강 건너에서 총을 쏘거나 산위에서 줄을 타고 내려오면서 진행된 전투는 격렬하였다. 끝내 굴은 함락되었고 권두문 군수 및 여러 관원은 포로가 되었다. 권두문 군수의 애첩 강소사(康召史)는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자결하였다. 『평창군신지지』에도 이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처럼 매로 인하여 화를 입었다고 하여 응암굴이라 하였다. 강건너 언덕에는 당시 일본군이 공격을 위해 쌓았던 300여 평의 돌무지가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응암굴 [鷹岩屈, Eungamg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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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호세

샹그리라의 말뜻은 티베트 말로 [ 마음속의 해와 달 ]이라는 뜻이다. 香格里拉 [샹그리-라 (Shangri-la) ] 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것은 1933 년 영국의 소설가 제임스 힐톤 (James Hilton 1990~1945)이 그의 소설 ' 잃어버린 지평선 '에서다. ' 잃어버린 지평선 ( Lost Horizon ) '에는 인류의 영원한 꿈 '불로장생'을 염원한 샹그리라(香格里拉)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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