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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아시아

2005 캄보디아 앙코르왓 여행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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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가서 일기를 쓰거나 메모를 해와야되는데 그러질 않아서 여행기를
쓰자니 기억의 한계를 느낀다. 앞으로는 일기나 메모를 그때  그때 충실히
할 생각이다.


2005년 7월 25일

떠나기전 내가 가지고있는 캄보디아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은 킬링필드,끊임 없는 내전,
세계 7대 불가사의인 앙코르와트가 발견된 나라 정도였다.
 
한 나라에 대해서 알려면 그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하는데
우리가 언제 학교에서 캄보디아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운적이 있던가?
 
그래서 인터넷을 뒤지고,책을 구해서 읽어보지만 우리에게 생소한 발음의 왕조 이름,건물,지명,이름등은
도무지 머리속에 들어오질 않는다.
 
캄보디아의 역사중 앙코르부분에 대해서만 잠깐 살펴보자.
 
캄보디아의 역사는 1세기부터 8세기까지는 토착민들의 평범한 부족국가였다.
일반적으로 9세기초인 802년부터 1432년 사이를 앙코르시기라고 한다.
자야바르만 2세가 시엠립에서 40 Km 떨어진 쿠렌산에 귀족들을 불러들여
자신을 신격화하는 의식(데바라자)을 치르고 난후 메콩강 동부지역인 바싼(basan)에서
프놈펜으로 수도를 옮긴다음 국명을 크메르라고 바꾸게 되는 사이를 말한다.
 
자야바르만 2세(802-850재위)가 세운 앙코르국이 캄보디아 왕조의 시발점이라 하겠다.
앙코르문명이 가장 전성기에 달한 때는 12세기. 
즉 수리야바르만 2세(재위 1112년~1152년)에서 자야바르만 7세(재위 1181년~1201년)까지이다. 
 
캄보디아에 대해 백지상태지만 책이나 사진들로 보아온 그 찬란한 문명을 구가했었던 나라가
어찌 지금은 이렇게 가난한 나라로 전락했는지?
하는 의구심을 품고 떠났다.
 
가장 현실적으로 머리속에 남는 것은 공항에서 입국 수속시 관리들이 급행료를 공개적으로 요구하니
대비하라는 것이다.그것도 한국 관광객에게만....
이해가 잘 안가는 부분이었다.
 
드디어 아들과 함께 캄보디아행 아시아나에 올라 5시간여의 비행끝에 캄보디아의 씨엠립 공항에 도착.
이미 날은 사방은 어둡고 국제공항 답지 않게 이동식 계단트랩으로 공항 계류장에 내려서
걸어서 공항건물로 들어서야 했다.
 
아시아나 항공이니 대부분 한국관광객이다.
줄지어 서서 미리 작성한 비자 발급 서류와 사진을 내미니 대여섯명의 관리들이 나란히 앉아 비자를 
여권에 붙이고 마지막으로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싸인을 한 후 바로 비자가 붙은 여권의 사진을 보여주면
알아서 자기 여권과 비자발급비 20달러와 교환하면 되었다.
 
여기까지는 아주 순조롭게 잘 진행이 되었다.
입국심사대에서 여권과 입국신고서를 내미니 영어로 뭐라고 중얼거린다.
잘 들어보니 입국신고서에 비자 No.를 쓰라는 거다.
비자를 들여다 보니 숫자가 여러개 있어 이거냐고 물어보니 웃는다.
그러더니 One 달러...One 달러...속삭인다.
그래서 주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망설이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가 생각나서 선뜻 꺼내주었더니 Ok! Ok!하면서 나가란다.
 
잘 한건지?나중에 알고보니 공무원 월급이 월 50 달러 정도인데
이곳 물가로 그 월급으로 못 먹고 산단다.
그래서 특히 한국 사람의 성질 급한 것을 알고 한국사람에게만 요구한다고 한다. 
이부분은 한국 현지여행사들이 잘못 길들인 책임이 크다고...
원래 입국 심사장엔 현지 여행사 직원들이 못들어오게 되어있는데 얕은 술수를 불여
입국 심시장까지 들어와 한국 단체 관광객의 여권을 모두 걷어서 급행료와 함께 내면 나중에
호텔로 여권을 갖다 준다고 한다.
 
물론 입국 심사는 프리패스.....
이 부분은 주 캄보디아 한국대사관과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에
여러사람이 항의 공문을 보내서 시정조치키로 했다는데
현지 여행사들이 계속 그러고 있다고.....
 
급행료 One 달러를 낸 덕분에 일찍 나와 
버스에서 다른 일행들을 한참 기다려 캄캄한 이국의 밤길을 달려 호텔에 도착 여장을 푼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현지시간으로 새벽 5시.
우리나라보다 시차가 2시간 늦기때문에 평소의 습관대로 잠이 깨었다.

2005년 7월 26일
 
가이드에게 아침일출 찍을거라고 부탁하여 새벽에 툭툭을 대기 시켜
일출 사진찍으러 나섰다.
그러나 아침 일출이 시원치 않아 그저그런 사진 몇장 찍고 호텔에 돌아왔다.


수 많은 유적들이 있지만 인상깊었던 3곳만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가이드는 가장 뛰어난 유적은 맨 마지막에 보아야 한다고 왜냐하면
뛰어난 유적을 제일 먼저 보면 다음에 방문하는 다른 유적들은
시시해 보인다나...그 말도 일리가 있는 말 같다.

바꽁(Bakong)

9세기 후반의 인드라바르만 1세(877년-889년 재위)때 지어진 
바꽁 사원은 인공으로 축조한 산 위에 직사각형의 성벽이 
두 겹으로 둘러싸고 있으며, 
 
기초부분만 9세기 때의 원래 형태로 남아있으며 나머지 부분은 12세기경에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사원의 주위는  해자로 둘러쌓여있는데 지금은 별로 물이 없었다.
이 해자는 앙코르의 대부분 사원에서 볼 수 있는 형태이다.  
 
중앙사원의 탑부분은 꼭대기는 연꽃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우주의 산인 메루산을 상징한다.
중앙 사원을 구성하는 4개의 층은 신화의 세계에 나오는 네 신(神)인 
나가(Naga), 가루다(Garuda), 락싸싸(Laksasa), 약싸(Yaksa)를 의미한다고 한다.
이들 신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면 끝이 없다.
 
역사와 신화를 알지 못하면 그 나라를 이해 할 수 없다.
그리스 로마 신화는 우리가 그런대로 어렴풋이나마 알지만
우리와 가까운 동남아국가의 신화는 아는 것이 전혀없다.
 
우리가 유럽을 기준으로 배우는 세계사의 관점도 다시금 재조명 해보아야
할 시점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우리에게 더 많은 영향을 끼쳤고 지리적으로도
더 가까운 나라임에도 우리는 그 나라에 대해 무지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다.
 
동쪽의 입구로 사원을 들어서자 큰 뱀의 형상을 한 둥근 돌이 길게 해자를 가로지르며 길을 따라  
누워잇었는데 이 뱀의 형상은 앙코르와트나 다른 유적지에서도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사원을
지키는 수호신의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 뱀의 형상을 지나면 최근에 지은 지붕의 색이 퇴색한듯한 갈색으로 칠해지고
지붕의 끝부분이 하늘로 삐죽 솟은 특색있는 절이 오른쪽으로 보인다.
이 절은 최근에 지어졌다고 한다.
 
앞으로 더 나가자 2개의 긴방이 동쪽 벽과 평행하게 좌우에 대칭으로 하나씩 있었는데
사원을 방문하는 방문객들의 휴식처로 추측된다고 한다. 
긴 방을 지나 중앙 통로의 양편을 보면 4개의 문이 있는 두개의 사각형 건물이 있는데, 
오른쪽 건물 안에서 이 사원 전체에 관한 기록이 발견되었다.
 
북동쪽과 남동쪽 꼭지 부분에는 서쪽으로 문을 낸 사각형의 벽돌 건물이 보이는데, 
굴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화장터 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고 내지는 도서관으로 추정되는 사암으로 만든 두개의 긴 건물이 폐허처럼 양쪽에 하나씩 있으며 
입구는 중앙 통로를 마주보고 있다. 
 
계단을 오르지 양옆에는 사자 석상이 지키고 있다.
우리나라 고궁의 해태석상과 비슷한 이미지였다.
 
중앙사원의 각 4면에는 2개씩의 탑이 있어서 모두 8개의 탑이 외부를 둘러싸고 있는 형상이다. 
이 탑들의 벽돌에는 벽토를 두껍게 발라 그 위에 조각을 하였다. 
또 이 탑들은 동쪽으로 문이 나 있으며, 다른 3면은 가짜 문으로 막혀있다.
이 가짜문들은 신이 드나드는 문이라고 한다.
가짜 문에 새겨진 조각은 아주 정교하며 특히 탑의 앞 줄 오른쪽에 조각된 부조는 명작이라고 평가된다. 
 
탑들의 양면 벽에는 압살라인지 잘 모르지만 흩어진 조각들을 다시 맞추어 놓았는데
긴 세월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단면이었다.
 

바콩사원

 
수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파괴되고 흩어진 조각들이 딩구는 사원을 돌아보며
이렇게 훌륭한 사원을 건축했던 찬란한 문명을 과시하던 옛 크메르인의
부귀영화는 왜 멸망했을까? 왜 밀림속에 묻혀버렸을까?   
모든 것들을 머리속에서 의문만 남기고 발길을 돌려 다음 유적지로 향한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앙코르왓을 가다
 
앙코르와트(Angkor Wat)
 
앙코르 최대의 걸작 건축물인 앙코르와트가 수리야바르만 2세때 건설됐다. 
힌두교의 우주관을 고스란히 담아낸 건축물로 오랜동안 밀림에 묻혀있다가
프랑스인 앙리 무오에 세상에 그 모습이 알려진 후 세계7대 불가사의로 불리고 있다.
 
힌두교의 사원으로 지어졌지만 지금은 불교사원으로 쓰여지고 있다.
다른 종교간에 하나의 사원을 아무런 훼손없이 다른 종교가 받아들여
사용하는 것은 보편적인 사고를  가진 나로서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종교적 문화차이로 인해 유적을 훼손하고 전쟁까지 불사한 종족이나 국가가 
이 지구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캄보디아인의 특질이 융합,화합,체념...알 수 가 없다.
 
앙코르와트는 아주 거대하고 구조가 복잡해서
사전에 건축물에 대한 구조나 지식을 조금 알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지구의 중심인 메루산(불교의 수미산)의 다섯 봉우리를 5개의 첨탑으로 표현했다. 
대지를 가르는 7개의 바다는 폭 190 m 둘레 5.4㎞의 해자(垓子)에 담겨있다.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유독 이 앙코르와트만 정 서향으로 지어져 있다. 
죽음을 상징하는 서향으로 지어진 것은 왕이 살아있을때는 사원으로
사용하다가 왕이 죽으면 무덤으로 사용하려고 지은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 가능하다.
 
앙코르왓은 크게 3개의 층으로 1층은 미물계,2층은 인간계,3층은 천상계라한다.
특히 각층의 사방을 둘러싼 회랑에 왼쪽부터 시작되는 새겨진 부조가 압권이다.
해가 뜨는 동쪽에는 힌두 창조신화인 유해교반의 조각(생명의 탄생)이
해가 지는 서쪽에는 전쟁장면(죽음)이 조각되어있는데
크메르인들의 힌두신화나 우주론을 반영한 것이다.
 
라마야나, 마하바라타 등 힌두교의 전설을 삽화처럼 조각해 놓았다. 
수만개의 돌을 쌓아 조성한 벽은 바늘이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는 정교함을 보이고
마치 나무나 종이를 다루듯한 조각술은 과연 인간의 한계 
아니 옛 캄보디아인의 창조성,예술성, 과학적 기술의 우수성은 
어디에서 그 근원이 솟아난것인지 감탄만 할 수 밖에 없다.
 
마지막층인 천상계를 오르는 계단의 기울기는 70도로 두손을 집고 기어서
올라가야 하는데 이는 신을 만나러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몸을 낮추어야
하도록 설계하였다 한다.
 
천상계에 올라가니 3분의 스님들이 편안히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그 얼굴에서 미소를 본다.
 
다른 유적을 돌아보면서 무수히 보이는 압살라의 미소,부처의 미소...
거리의 사람들 특히 아이들의 미소....참 선하게들 생긴 얼굴에 떠오르는 미소와
유적지의 미소들을 머리속으로 오버랩 시켜보니  
그래 맞아! 캄보디아의 불가사의는 저 미소속에 있음을...
 
석양빛을 받은 아름다운 앙코르왓을 뒤로 하며 걸어나오는데 사람들이
뒤돌아 보며 Rainbow!! 라고 외친다. 뒤 돌아보니 저 멀리 앙코르왓을
배경으로 휘미하게 무지개가 걸려있다.
운 좋게 무지개를 보다니....행운이다.
 

무지개가 살짝 걸린 앙코르왓트

 
프놈바껭
 
해지기전에 바삐 프놈바켕의 일몰을 보러 이동.
프놈바켕은 앙코르문명의 기틀을 마련한 야소바르만 1세(재위 889~910년)가 
세운 사원이다. 가파른 돌길을  헉헉거리며 오르니 거의 흔적만 남은 사원 주위엔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앙코르 관광객이 모두 모인 듯 앉거니 서거니
서쪽 하늘을 쳐다보며 북적댄다. 
삼각대를 세운 전문 사진가들도 눈에 뛴다.카메라란 카메라는 모두 꺼내어
일몰을 담기위해 기다리지만 구름만 잔뜩 낀 서쪽하늘은 그저 불그스럼하기만 하다.
 
포기하고 돌아서 한개층을 내려오며 뒤를 돌아보니
여태껏 불그스럼한 빛을 보여주던 하늘이 구름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지 않은가...
허겁지겁 다시 되돌아가 셧터를 연신 눌렀다.
아~ 황홀한 일몰이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몰은 보기 힘든데...
우기라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해는 이미 서쪽 샵 호수뒤로 떨어져 보이지 않지만 어두워져 오는 하늘은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연출하고 있었다. 
 

프놈바켕의 일몰



여행을 마치며

공항에서 입국 심사관의 급행료 1달러 요구,
관광지에서 조악한 기념품을 들고
1달러 아니면 옷도 제대로 못 걸치고
그냥 1 달러를 달라고 달라붙는 아이들.....
한국 625 전쟁 후 우리도 미군들을 향해 저랬는데....
 
톤레샵 호수의 보트피플들의 삶을 보며 또 한번 가슴이 저려왔다.
그 보트피플들을 관광거리로 내걸고돈을 받는 캄보디아 군인들..들어가는 길목에서
통행료를 징수한다.
 
국민의 3분1인 200만명을 죽음으로 내몬 킬링필드 학살. 
 
그때 당시 지식인들...
안경낀 사람,
외국어 할줄 아는 사람,
얼굴 하얀 사람등등 모두 끌고가서 죽인 대학살로
아직도 자식들을 공부 시키지 않는 부모들....
공부시킬 여력도 없지만....

30-50대 지식인이 없어 국가관리가 되지 않아 세금도 제대로 못 걷우는 나라.
전기도 이웃 베트남에서 사다가 공급하고 있는 나라.  
자국돈 보다 달러를 더 선호하는 나라.
 
캄보디아를 몇일 둘러 보았다고 그 나라를 이해할 수 는 없다.

그러나 두손모아 합장하며 인사하는 그들의 미소진 선한 얼굴을 
보며 그들의 조상들이 이룩해냈던 찬란한 문명의 잠재력을 
지닌 그들은 언젠가 그 잠재력을 발휘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지도자를 잘 만나야 국가도 국민들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을 새삼느낀다.

이번 여행길에 인스탄트 카메라를 사서 들고 갔다.
중국 실크로드 여행길에 사진을 찍고 액정화면을 보여주면 신기한듯 들여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은 보기 좋은데 내게는 별 의미가 없다는 느낌이 들어 즉석에서 사진을 뽑아주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필림도 좀 여유있게 준비해 가서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주었더니
의외로 반응이 좋다.서로 찍어 달라고 난리다.그리고 자연스럽게 교감을 이룰 수 도 있어서
좋았다.

다음엔 나 혼자 배낭메고 카메라 한대 들고 다시 한번 캄보디아를 방문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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