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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유럽

2016 스페인 여행기 05, 바르셀로나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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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엘공원을 떠난 버스는 가우디의 걸작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 성당으로 향한다. 하지만 지나가는 길옆에 바로 성당이 보이는데도 한참 떨어진 곳에 버스를 세우더니 가이드가 앞장 서서 걸어가는데 자기걸음으로 빨리 걸으면 신호등 3개를 녹색불에 맞추어서 건널 수 있으므로 쉬지 않고 빨리 따라 오라고 당부한다. 얼마나 이길을 많이 다녔으면....그리고 관광버스들이 아무곳이나 주정차를 못하게 하고 철저한 단속을 하는지 알 것 같다. 

 

경복궁이나 남대문 시장 부근의 관광버스 주차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우리나라의 경찰이나 시청 간부들이 보고 좀 배웠으면 좋겠다.

 

사진 뷰 포인트인 성당앞 연못이 있는 공원에 먼저 도착, 이곳이 성 가족 성당의 전체모습을 다 담을 수 있는 사진 포인트이다. 사진을 찍은 후 성당에 입장. 들어가기전에 배낭등 짐이 큰것은 검색대통과 후 별도로 보관을 해야하기때문에 일행과의 관람보조를 위해서 버스에 두고 내리라 해서 카메라에 17-35mm 광각렌즈만 끼운채 검색대를 통과했다. 아침에 같이 탔던 스페인 가이드 아줌마가 카탈로그를 나누어 주는데 '한국어가 없냐?'고 하니 한국어는 없단다. 나중에 보니 그나마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된 카타로그이다.

가이드의 설명을 무선으로 들을 수 있게 해주는 수신기를 하나씩 받아서 귀에 끼고 가이드의 설명을 들었으나 듣는 순간 한쪽 귀로 흘러 나가기 때문에 기억력의 한계로 가이드 설명대로 옮겨 글을 적을 수 없는게 안타갑다.

 

안토니 가우디 이코르네트(카탈루냐어: Antoni Placid Gaudí i Cornet, 1852년 6월 25일 - 1926년 6월 10일)

스페인 카탈루냐 지역의 건축가이다.
기록된 그의 정식 이름은‘안토니 플라시드 기옘 가우디 이 코르넷 (Antoni Plàcid Guillem Gaudí i Cornet)' 이다. 

아버지쪽 가문은 프랑스계의 가우디 집안이고, 어머니쪽이 코르넷 가문이다. 안토니라는 이름은 그의 어머니의 것을 물려받은 것이다. 

74세를 살았으니 당시로서는 단명한 것은 아니나, 젊어서 가족의 대부분을 잃고 쓸쓸한 인생을 살았다고 전해진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밀라 주택, 바트요 주택, 구엘 저택, 구엘 공원,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등을 설계했다. 19세기말 카탈루냐 지역에는 사회적, 문화적으로 대단한 변화가 있었다. 가우디는 당시 카탈루냐 건축을 주도했던 고전주의 건축을 벗어나, 건조한 기하학 만이 강조된 건축이 아닌 나무, 하늘, 구름, 바람, 식물, 곤충 등 자연의 사물들을 관찰했고, 그런 형태들의 가능성에 관하여 진지하게 고민했다. 

그 결과 그의 건축물은 기하학적인 형태들 외에도 곡선이 많이 사용되었으며, 내부 장식과 색, 빛이 조화를 이룬 건물들을 건축했다.

1918년 부터는 자신이 평생동안 건축해온 성가정 (성가족) 대성당 건설에 매진했지만 재정 문제로 인해 끝을 보지 못하고 1926년 6월 7일 성당에서 미사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에 지나가던 제38호 전차에 부딪혀 치명상을 당했다. 
그러나 운전수는 지저분한 노숙인으로 생각하고 그를 길 옆에 팽개치고 전차를 몰고 가버렸다. 사람들이 병원으로 데려가고자 택시를 찾았지만 역시 노숙인으로 생각한 기사들은 그냥 지나쳐 3번의 승차 거부 끝에 4번째로 잡은 택시 운전수가 겨우 운전했지만 병원도 2곳이나 진료 거부를 당해 빈민들을 구제하기 위한 무상 병원에 놔두고 가버렸다고 한다. 
문제는 신분을 증명하는 것인데 병원에서 방치된 채로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린 가우디는 병원 간호사에게 이름을 말하자 병원 관계자들은 경악을 하며 가우디의 친척들과 친구들에게 급히 연락했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온 그들이 다른 병원으로 옮기자고 말했지만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에게 이 거지같은 가우디가 이런 곳에서 죽는다는 것을 보여주게 하라. 그리고 난 가난한 사람들 곁에 있다가 죽는 게 낫다"라며 그대로 빈민 병원에 남았고 결국 1926년 6월 10일 7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를 죽게 만든 제38호 전차 운전수는 파직과 동시에 구속되었으며, 승차 거부한 택시 운전수 3명도 불구속 입건되었다. 
결국 택시 운전수 3명과 그의 치료를 거부했던 병원은 막대한 배상금을 가우디 유족에게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그리고 장례식은 1926년 6월 13일 많은 군중들이 모인 가운데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되었고, 유해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의 건물 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은 현재까지 모두 7 작품이다.

1.비센스 주택 1878-1880
2.구엘 저택 1885-1889
3.구엘 공장단지 내 지하경당 1898-1914
4.구엘 공원 1900-1914
5.바트요 주택 1904-1906
6.밀라 주택 1905-1910
7.성가족성당 탄생 입면 및 지하경당 1884-1926

그중 구엘저택과 밀라주택, 성가족성당은 각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으며, 바르셀로나에 있는 성가족 성당은 아직도 건축 중에 있다.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 성당

 

 

 

▲공원 놀이터의 아이들

 

 

사그라다 파밀리아(La Sagrada Familia)

성 가족 (La Sagrada Familia) 성당은 말 그대로 예수의 가족을 위해 봉헌된 성당이다. 즉 예수, 성모마리아, 예수의 아버지 성요셉을 위한 성당이다.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한 건축물중 유일하게 짓고있는중의 건축물이 성가족 성당이다.

성당의 파사드(Facade : 출입구의 정면 상부)는 예수의 탄생, 예수의 수난, 예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석조 조각물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의 영광을 표현하는 파사드는 현재 공사중이다. 

파사드위에는 현재 4개의 첨탑이 있는데  예수님의 12제자를 상징한다고 한다. 앞으로 예수님을 상징하는 제일 높은 주 첨탑을 세우고 나마지 첨탑도 세울 예정이라 한다. 완공예정은 지금부터 10년 후인 2016년 이다.

예수의 탄생 파사드 입구 문위에는 3개의 파사드가 있는데 가운데의 '사랑의 문' 위의 파사드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나타나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하였다고 알려주며 예수의 탄생, 천사들의 찬양, 동방박사와 목동들의 경배하는 모습을 돌로 정교하게 조각하여 표현하였다.

왼쪽의 '소망의 문'위 파사드에는 요셉과 마리아의 정혼, 성 가족의 이집트 피난 길, 요셉과 어린 예수, 로마병사의 유대인 아기 살해등이 조각되어 있다. 

오른쪽의 '믿음의 문'위 파사드에는 목수일을 하는 예수, 아기 예수의 성전 봉헌, 어린 예수를 찾는 요셉과 마리아,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등 예수 탄생과 성장기의 주요 삶을 조각해 놓았다.

가우디는 글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의 일생을 알기쉽도록 이렇게 정교하게 조각으로 표현하였다.

 

 

성당의 외관은 지은지 오래되어서(1883년부터 짓기 시작) 그런지 먼지가 끼어 칙칙한 느낌이 난다.

 

 

 

▲예수의 탄생

 

 

 

▲경배하는 동방박사

 

 

 

▲로마 병사들의 아기 살해장면 - 오른쪽 아래 

 

 

 

내부에 들어가니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해들어오는 자연광과  기둥에 있는 전구의 불빛으로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특히 천장부의 형상은 빛의 조화인지 여태껏 본 성당의 천장보다 신비로운 느낌을 주었다.

나무를 형상화한 가우디의 자연친화적인 건축기법이다. 중앙 제단은 현재 공사중이라 벽으로 가려져 있었다.

십자가에 메달린 예수는 중앙제단위 공중에 메달려 있고 그위에 우산같은 덮개가 걸려있어 또 다른 느낌이다.

 

내부에는 기둥들이 여러개 있는데  특히 중앙제단의 4개의 돌기둥은 색갈이 조금 더 붉은 색이 돈다.

가우디는 이 4개의 기둥들은 아주 단단한 재료로 구하기위해 이란(?)에서 수입해왔다고 가이드한테 들었는데 어느나라인지 가물가물하다.

가우디가  4개의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얹고 그위에 첨탑을 세워야하는데 그 무게를 받쳐줄 구조설계를 못하고 세월을 보내던중 몬세라트 수도원에서 한참 기도를 하다 눈을 들어 창밖을 내다보는 순간 영감을 얻었다고 하는데 바로 나뭇가지 였다고 한다.

수 없이 많은 나무들을 지나치고 쳐다보며 지냈는데 그것을 미쳐 깨닫지 못하다가 기도를 하다가 비로소 깨우쳤다고 한다.

그후 기둥위의 지붕을 받치기위한 기둥은 나무가지처럼 4개로 갈라진 기둥으로 설계했다 한다. 

 

 

 

 

▲신비스러운 빛으로 가득찬 내부

 

 

 

▲스테인드 글라스

 

 

▲중앙의 네 기둥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상징한다

 

 

 

▲해바라기 문양

 

 

 

▲자연채광

 

 

 

영광의 파사드는 몬세라트 수도원에 있는 '산타 조지'의 조각상을 만든 수비라치의 작품이다. 그는 간결한 선으로 예수의 수난을 표현하였고 대담하게 예수의 성기도 사실대로 표현하였다. 그는 카톨릭 신자가 아니어서 객곽적인 입장에서 성서를 해석, 작품에 반영하였다고 한다. 로마시대에는 사형수의 옷을 나누어 가져가는 관습이 있었는데 예수를 처형할 때도 로마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고 나서 예수의 옷을 나누어 가져갔다는 내용에 따라 완전 나체로 표현하므로. 파사드에 마태복음의 내용을 충실하게 반영하였다.

 

예수 조각상 바로 아래에 얼굴 없는 여인의 조각상이 있는데 예수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를 때 예수의 얼굴이 피범벅이 되자  베로니카라는 여인이 수건으로 예수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는 마태복음의 내용이며 이 여인이들고 있는 수건에는 예수의 얼굴이 조각 되어있다. 

내가 볼때는 이 파사드는 예수의 수난으로 보이는데 왜 영광의 파사드로 이름을 붙였는지 조금 이상하다.

 

 

 

▲영광의 파사드

 

 

그 외에 십자기를 지고 가는 예수, 예수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는 시몬,  가우디의 옆 모습, 예수의 빰에 입을  맞추는 유다, 예수를 배신 한 유다 뒤에 새겨놓은 뱀, 예수의 뒤에 새겨진 마방진등이 있다.

마방진은 원래 가로 세로 대각선으로 다른 숫자들 배열하여 각각의 수의 합이 모두 같게 만드는 것인데 이 마방진 숫자판은 단순히 수난 당할시 예수의 나이 33을  나타내기 위해 만든 것이다.

 

 

 

▲영광의 파사드

 

 

성당을 나와 성당앞의 가게에서 잠시 쇼핑하는 시간을 가진 후 버스에 올라 저녁 식사하러 갔다. 

 

 

 

▲Sagrada Familia의 모형

 

 

 

▲기념품 가게

 

 

 

 

 

▲성가대원들

 

 

 

 

 

▲공사중인 영광의 파사드 - 시멘트 구조물이 보인다

 

 

 

 

 

▲구엘공원 - 라 파밀리아 사그라다 - 식당 이동경로

 

 

바닷가의 한 식당에서 생선요리와 야채를 한접시씩 해치우고 바르셀로나 공항으로 이동. 스페인 국내선으로 마드리드로 이동했다. 

 

 

 

▲생선요리

 

 

 

 

 

▲식당

 

 

 

 

 

▲해변

 

 

 

 

 

 

▲바르셀로나 식당앞 - 바르셀로나 공항(20Km, 21분 소요.)

 

 

 

 

▲바르셀로나 공항

 

 

 

 

▲부엘링항공 체크인 카운터

 

 

 

바르셀로나 발 마드리드행은 스페인 국내선 부엘링(Vueling)항공 VY10105편 20:35발  마드리드 21:55 착 예정이다. 스페인은 섬머타임을 실시해도 밤10시쯤에야 주위가 어둑어둑해진다.

 

그런고로 스페인 사람들은 하루 5끼를 먹는단다. 한낮에는 씨에스타라 하여 낮잠이나 휴식시간을 갖고 저녁은 9시나 되어서 먹는게 보통이라 한다.

 

 

마드리드(Madrid) 공항에 도착하여 어두워진 밤거리를 1시간 50분이나 달려 마드리드 시내에서 한참 떨어진 Holiday Inn Express Madrid Rivas라는 호텔에 10:50에 도착.

오늘도 밤늦게 숙소에 도착해 여장을 푼다.

 

 

 

▲마드리드공항→호텔 이동 경로(29Km)

 

 

유럽의 호텔들은 엘리베이터가 작아서 단체로 34명이 짐을 방으로 나르는것도 한참 걸린다. 짐만 몇개 올리고 사람만 계단으로 올라가서 짐을 내리는 방법으로 알아서 처리하는 우리 일행들...어디가나 급해...ㅎㅎ

 

프런트 데스크에 적혀있는 Wifi 비밀번호를 사진 찍어와서  Wifi 접속을 시도해보지만 접속이 안된다. 그런데 방의 에어컨이 작동하지 않아 데스크에 전화하려니 전화기가 먹통이다. 

할 수 없이 내려가서 에어컨이 안된다고 다 잊어버린 어슬픈 스페인어로 대화시도...그래도 호텔이라 영어로 대답해준다. 잠시 기다리면 될거라고 가서 기다려 보란다.

다시 방으로 돌아와 기다려보지만 되기는 뭐가 되는지...바깥 공기가 더 시원하다. 다시 내려가서 얘기했더니 자기가 올라가보겠단다. 잠시후 올라왔는데 조그만 드라이버를 가지고 올라왔다.

그러더니 드라이브를 온도조절기의 가운데 구멍에 넣고 돌리며 만지니 팬이 돌아간다. 온도조절기 놉이 부러져 나가있다. 그래서 내가 '드라이버를 놓고 가라' 고 농담 한마디 했다.

 

다시 Wifi 접속 시도...접속이 안되길래 데이타로밍을 잠시 해제했더니 데이타 로밍 요금이 금방 30,000원 부과되었다고 문자가 오더니금방 50,000원이 부괴되었다며 다시 문자가 왔다. 이런 낭패가 있나.

문자의 무료 안내접속 전화로 한국에 전화를 해서 ARS로 데이타로밍을 강제 정지 시켰다. 이럴줄 알았으면 로밍서비스를 신청할 걸...스페인 통신요금이 얼마나 비싸건지?

호텔이라고는 Wifi 도 접속이 잘 안되다니 그런데 iPad는 느리긴 하지만 접속이 되는 걸 보면 통신품질에 문제가 많은가 보다. 아니면 호텔의 Wifi 중계기 설치가 시원치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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