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사 앞에서 장어구이로 식사한 후 어디로 갈까? 하다가 예전에 서정주 생가부근에서 국화축제 행사가 열려 선운사에 왔다가 가본 기억이 되살아나서 가보기로 했다.
선운사에서 가까웠다.
그런데 주차할 곳이 없어 사람도 없길래 잠깐 마당에 차를 세우고 사진 몇장 찍고 나왔다.
▲오가네 장어 → 서정주 생가 (5.2Km, 11분 소요)

미당 서정주 하면 떠오르는 "국화 옆에서"라는 시(詩).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 같다.
국화 옆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오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보다

미당 서정주 생가는 옛날 시골마을의 소박한 전형적인 농가이다.

별채

우물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물이 말랐다.

서정주의 동천(冬天)이라는 시가 걸려있다.

유향재(有鄕齋)

별채

"국화와 산돌" 시비(詩碑)
국화를 주제로 한 시를 많이 썼나 보다.
뒤편 아크릴판에 "국화 옆에서" 시가 걸려있다.


미당 생가
1915년 음력 5월 18일 이곳에서 태어났다.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었다가 2001년 8월에 옛 모습대로 복원.
미당 서정주 생가
고창의 선운사, 질마재 부근 진마마을에 위치한 미당 서정주의 생가이다.
미당은 어린 시절 이 집에서 서당을 다니다가 10살 때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5세 때인 1929년 서울 계동에 있는 중앙고등보통학교에 입학하였다. 이곳은 그가 아홉 살 무렵 부안 줄포보통학교에 입학하려고 이사 가기 전까지 살던 집인 것이다.
1942년 부친이 죽은 후 친척이 개조하여 거주하다가 1970년 경부터는 사람이 살지 않은 채로 방치되었고 2001년 복원되었다. 생가 곳곳에는 그의 시와 글이 새겨진 큰 바위가 세워져 있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초가지붕 본채, 정면 3칸, 측면 2칸의 헛간이 있는 초가지붕 아래채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인근에는 미당 서정주를 기리는 미당 시문학관과 인촌 생가가 위치한다.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사람들이 찾지 않는 생가는 생기를 잃은 것 같다.
이 가을에 국화 화분 몇 개만 놓아두어도 분위기가 좋았을 것 같다.
스토리텔링을 잘해서 여러 사람들이 찾는 명소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반응형
'한국의 산하 > 전라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고창 고창읍성(모양성)의 가을단풍 (2) | 2025.11.21 |
|---|---|
| Cafe 연다원(衍茶園) (0) | 2025.11.17 |
| 2025 고창 선운사 도솔천 단풍 (0) | 2025.11.13 |
| 물 위에 떠오른 한 폭의 그림-임실 옥정호 붕어섬 (2) | 2025.06.09 |
| 천상의 아름다움을 품은 조선의 명루-남원 광한루(南原 廣寒樓) 야경 (3) | 2025.06.08 |
글에 남긴 여러분의 의견은 개 입니다.